아티클

범일동 시장 사람들 — 30년 단골의 이유

사라지는 것들과 남는 것들 사이에서, 한 시장이 여전히 살아있는 방식.

수북이 쌓인 두부 블록과 손글씨 가격표가 놓인 범일동 시장 좌판

부산 범일동 재래시장 안쪽, 된장찌개 냄새와 생선 비린내가 섞이는 골목에 최씨 아주머니의 두부 가게가 있다. 1993년에 처음 문을 열었으니 올해로 서른한 해째다. 가게 앞에는 플라스틱 의자 두 개가 늘 나와 있고, 평일 오전이면 그 의자를 채우는 단골들이 있다. 이들은 단순히 두부를 사러 오는 게 아니다. 아주머니의 안부를 묻고, 지난주에 있었던 일을 이야기하고, 오늘 날씨가 어떠냐는 말을 주고받으러 온다. 범일동 시장이 재개발 논의에 오르내린 게 이미 몇 년 전이다. 근처 아파트 단지가 들어서면서 인구 구조가 바뀌고, 대형 마트가 생기면서 장을 보는 방식도 달라졌다. 그런데 시장은 아직 여기 있다. 왜일까. 새 그룹은 범일동 시장에서 세 달을 보냈다. 매주 두 번 방문해 상인과 손님을 만났고, 그들이 이 공간에 계속 오는 이유를 물었다. 돌아온 대답은 대부분 비슷했다. ‘여기서는 사람을 알아봐 주니까요.’ 대형 마트의 셀프 계산대는 손님을 알아보지 않는다. 앱 배달 서비스는 주문자의 이름을 화면에 띄우지만, 그 이름 뒤의 사람에 대해서는 아무것도 묻지 않는다. 범일동 시장의 단골 관계는 다르다. 최씨 아주머니는 단골 손님이 두 달쯤 안 보이면 걱정부터 한다고 했다. ‘아프신 거 아닌지, 이사 가신 건 아닌지.’ 그 걱정이 단골을 다시 불러온다.

시장이 영원히 살아남을 것이라는 말은 하지 않겠다. 상인 중 몇몇은 이미 후계자를 찾지 못해 고민 중이고, 임대료는 조금씩 오르고 있다. 재개발이 결정되면 현재의 시장은 사라질 수 있다. 그건 솔직하게 말해야 한다. 하지만 지금 이 순간, 범일동 시장은 단골이라는 인간적인 관계망 위에서 버티고 있다. 30년을 이어온 두부 가게의 힘은 두부 맛이 아니라, 최씨 아주머니가 손님의 얼굴을 기억한다는 사실에 있다.

이런 글이 마음에 들었다면

뉴스레터를 구독하면 다음 아티클을 가장 먼저 받아볼 수 있어.

구독 신청하기